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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랭 드 보통'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10.01.17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 알랭 드 보통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카테고리 소설
지은이 알랭 드 보통 (청미래, 200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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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마지막장을 덥자마자 떨리는 마음으로 빨리 몇자라도 적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랜만에.
앞에 읽은 몇 권의 책들은 신나게 읽고도 어딘가 모르게 허탈하고 마음껏 다 이해하지 못했다는 헛헛함 때문에 기록을 남기는 것을 미루거나 포기했다. 뿐만 아니라 요 근래 부표잃은 어부처럼 방황하던 터였다.

메인 편집의 힘을 막강하게 발휘하고 있는 네이버 덕분에 이 책을 알게 되었다. 유명인의 서재를 탐방하고 그가 읽은 책, 책에 대한 생각을 소개하는 코너에서 김제동이 이 책을 추천했다. 알랭 드 보통의 책은 분명 내가 관심 갖고있는 주제들을 그 만의 개성으로 다루지만 책장넘기기가 만만치 않았던 기억이 있다. 번역탓인지 아니면 그의 문체가 독특해서인지. 그래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서평을 검색해보니 그의 처녀작이자 전세계적으로 열렬한 반응을 이끌었다고 한다.

제목부터가 나의 관심을 끌기에 적절했다. 몇년째 한 사람에 대한 생각 때문에 방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생각이, 생각으로부터 파생되는 감정들이 '사랑'이라고 불릴만한 것인지 궁금했다. 그리고 왜 이렇게도 오랜시간을 도돌이표를 연주하듯이 반복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너라는 대상보다 너를 사랑한다고 생각하는 나를 탐구하는 편이 조금이나마 더 쉽지 싶어서.

그래서 대답을 구했느냐고 누가 묻는다면 뭐라고 해야할까.
나를 이해하는 데 반 발자국 정도 다가갔다고 해야할까.

저자의 주장들, 분석들을 뒷받침하기에 내가 경험한 것들을 다 대입해도 손색이 없을 것 같다. 그만큼 공감한다는 뜻이다. 평소 때 같으면 공감은 감동으로 다가왔다. 그렇지만 책에서 말하는 것처럼 내가 느꼈던 감정들이, 그로인해 고통스러웠던 시간들이 누구나 느끼는 흔한 것이라면 그것은 달갑지 않게 다가온다.
TV광고처럼 '다~그래'를 뒤집고 Oleh~! 를 외쳐야 할 것 같은 강박관념 같은 것이 머릿속을 채우는 것 같다.
그렇지만 어떻게?

한동안 책읽기의 목적 조차 잃고 방황하고 있었다.
나를 사랑하는 너를 통해 나의 존재를 확인하는데 
나를 사랑하는 너의 부재란, 너의 존재 안에서 내가 존재하지 않는 다며.
나에게 의미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그리고 고전과 신간을 번갈아가며 읽겠다는 막연한 계획을 지속하기란 어쩌면 처음부터 오래가지 못할 계획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간혹 알랭 드 보통 같은 현학적인 작가를 만나면 그가 하는 이야기 속에서 책읽는 이유를 발견할 때가 있다. 이미 알고 있는 익숙한 것에 대한 뿌듯함과 모르는 것에 대해 탐구해보고 싶은 욕구의 자극. 컴퓨터 화면으로 웹페이지를 볼 때 처럼 텍스트와 텍스트가 링크로 연결되어있는 하이퍼텍스트를 보고 있는 기분.

바닥에 떨어져있던 욕구들을 추스러 새로운 에너지를 만들어 내는 계기가 되길 바람.

저자 특유의 통찰력이 돋보였던 부분, 표현이 마음에 들었던 부분을 옮기려고 하면 타이핑을 노동처럼 하게 될 것 같다. 기억하고 싶은 부분의 목차 정도만 간략하게 남겨야겠다.

제11장 그녀에게서 무엇을 보는가
제14장 나의 확인
제18장 낭만적 테러리즘
제21장 자살
제22장 예수 콤플렉스


다음은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를 읽을 예정.



Posted by cooool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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