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시대배경, 시위현장 쫓기는 혹은 상처입은 사람들. 어쩌면 그런 일련의 신경숙 작가의 클리셰가 조금 식상하다는 생각이 고개를 들기도 전에 이런 생각을 한다.
내가 경험하지 못한 시대의 슬픔이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작품들에 손이 가는 것은, 어쩌면 두고 두고 잊지 말아야할 불편한 진실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뭔가 시대착오적인, 시대를 역행하는 듯한 말도 안 되는 사건들이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만큼 계속해서 이어지고 그로인해 사람들간의 신뢰는 더욱 무너져 가는 요즘이므로.
우리 모두가 때로는 크리스토퍼이거나 또 때로는 크리스토퍼를 통해 강을 건너는 사람임을 잊지 말아야 함을 상기시켜주는 인상적인 한 권의 소설이었다.
157p
그.때.의.그.절.망.만.큼, 이라는 그의 목소리가 물처럼 스며들어 내 마음에 파문을 일으켰다. 왜 누군가를 좋아하는 일은 기쁨이지만은 않을까. 왜 슬픔이고 절망이기도 할까 나는 성벽에 대고 있던 손을 거두고 일행들을 따라 걸음을 옮겼다. 뒤에서 그가 내 이름을 불렀을 때 나는 그가 하려는 말이 무엇인지 이미 알았다. 그를 향해 돌아섰다.
-오늘을 잊지 말자, 이 말 하려고 그랬지?
183p
내가 지금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생각해본다. 할 수 있는 일보다 할 수 없는 일들만 떠오른다. 진실과 선함의 기준은 무엇인가. 올바름과 정의는 어디에 숨어 있는가. 폭력적이거나 부패한 사회는 상호간의 소통을 막는다. 소통을 두려워하는 사회는 그 어떤 문제를 해결할 수 없게 된다. 나중엔 책임을 전가할 대상을 찾아 더 폭력적으로 된다.
210p
이렇게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순간들이 살아가는 동안 얼마나 많이 다가올까. 한 인간이 성장한다는 것은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순간들을 하나씩 통과해나가는 일인지도 모른다.
244p
작별이란 그렇게 손을 내밀지 못한 존재에게 손을 내밀게 하는 것인지도. 충분히 마음을 나누지 못한 존재에게 손을 내밀게 하는 것인지도.
358p.
어떤 시간을 두고 오래전, 이라고 말하고 있을 때면 어김없이 어딘가를 걷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오래전, 이라고 쓸 수 있을 만큼 시간이 흐른 후에야 알게 되는 것들, 어쩌면 우리는 그런 것들로 이루어져 있는지도 모른다.
분명 읽는 동안 눈물 찔찔짜고 속상해하고 마치 내 일인 것 처럼 안타까워했지만,
현실의 나는 감상에 빠진 나와 너무 이질감이 들어서 뭔가 끄적거리기도 부끄러웠던 터였다.
엄마에게도 엄마가 필요했다는 인간적인 메시지가 와 닿았지만
나는 현실의 엄마를 이해하거나 위로하는 착한 딸이 되지 못했다.
'엄마를 부탁해'라는 제목의 빨간 책을 들고 다니던 때는 몇 개월 전.
머플러 하기엔 더워보이고 그렇다고 얇은 봄점퍼 입기엔 밤바람이 차가운 봄의 초입이었다.
스윙 댄스 공연 연습을 하러 가던 길에 엄마가 저녁 먹고 가라고 해서 중국집에 들렀다가
어쩌다보니 시간이 많이 늦어버렸다.
혜화까지 가려면 30분에 한 대씩 있는 버스를 타야 하는데
그 버스가 저 만치 가고 있었다.
나는 이미 반쯤 포기했다.
엄마랑 007작전!
다행히 버스를 잡아탈 수 있게 되어가는 시점에
"놀러가는 딸 버스 태워주겠다고 이렇게까지 하는 엄마가 어디 있냐"
며 한껏 생색을 내주시는 오마니.
대뜸 나는 버럭 소리치며
"그러게 내가 중간에 내린댔잖아"
고맙다는 말 대신 적반하장의 진수를 보여주고 엄마차에서 내려서 얼른 버스에 올랐다.
그리고서는 한참 재미있게 읽고 있는 그 빨간책을 꺼냈는데
어휴!
이런건 읽어서 뭐하나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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