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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9/28'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13.09.28 ⑤ 에레소스에서의 일과 그리고 감사 - 8월 9일 금요일


그저 눈이 떠지면 일어나 터키식 커피에 빵과 치즈 간혹 삶은 계란이나 야채들을 곁들여 아침식사를 한다. 그리고 바로 옆집, 혹은 몇 골목 건너에 사는 이웃들에게 아침 인사를 하러 가거나 친구들을 만나러 간다.

다음은 파도가 잔잔한 스칼라 에레소스 해변에 수영하러 간다. 고개를 든 채 헤엄쳐서 한 번에 갈 수 있는 거리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몇 년 전 회사 근처 스포츠 센터에서 배운 자유영을 바다에서 써먹기엔 두려움이 너무 크다. 무엇보다도 짜다못해 쓰디쓴 바닷물을 먹게 되는게 가장 무섭다. 


스칼라 에레소스 바로 앞 작은 섬. 매주 주말 아침 레즈비언 수영대회가 열리는 곳이다.

스칼라 에레소스 해변과 해변가 마을의 전경. 약속이라도 한듯 모두 오렌지색 기와를 올린 지붕이 파란 하늘과 바다, 푸릇푸릇한 나무들과 기가막힌 조화를 이룬다.


스칼라 에레소스의 작은 항구. 작인 고깃배나 개인 보트가 정박해 있다.



다시 에레소스 빌리지로 돌아와서 가족들과 점심식사. 양고기, 생선, 토마토, 가지, 그리고 올리브오일을 주 재료로 하는 그리스 또는 터키 전통요리. 한낮 35도를 육박하는 에게해의 더운 날씨에 뜨거운 불 앞에서 땀 흘려가며 요리해 준 가족들의 노고에 더욱 맛있게 식사를 한다. 깔리오렉시! (맛있게 드세요)를 외치면 마치 이제막 어린 아이가 말을 배워입을 뗀 것처럼 다들 흐믓해 한다. 한편, 올리브유 듬뿍 눈에 보이는 기름층이 처음엔 이질감을 불러왔지만 먹으면 먹을수록 위약한 내 체질에는 오히려 속편한 음식이 되는 것 같다. 



이맘, 혹은 맘발디 라고 부르는 가지찜요리. 의외로 쌀밥과 잘 어울린다.



그리스식 샐러드와 그레이프 바인 립 롤(포도잎쌈). 샐러드는 김치처럼 거의 모든 음식과 함께 끼니마다 먹었고 포도잎쌈은 그 향기가 정말 독특해서 빠져드는 매력이 있다.


그리스 전통 디저트. 페스트리에 아몬드와 설탕을 넣고 돌돌돌 말아준. 단물이 뚝뚝 떨어져서 반입만 먹으면 딱 좋다.


그리고 하루 중 가장 더운 마의 시간대. 1m 가까이 두껍게 지은 벽도 뚫고 들어오는 열기. 그저 그늘을 찾아 한 숨 돌리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그래서 시에스타가 있나보다. 그러나 가급적 선풍기나 에어컨은 틀지 않으려고 했다. 왠지 자연과의 싸움에서 내가 루저가 된 듯한 느낌이 들어. 


5시쯤이 되면 마당 전체가 아름드리 호두나무 덕분에 제대로 그늘이 지고 해풍이 불어온다. 그러면 베가몬 게임을 할 시간이다. 그리스 전통 장기라고 할 수 있는 베가몬. 룰이 간단한 편이지만 주사위 숫자에 따라 다소 머리를 굴려줘야 한다. 배우는 재미가 쏠쏠하다.



이것이 베가몬 게임! 현지인들은 "따블리" 라고 부른다.




해는 9시가 되어도 뜸을 들이고 수평선에 기대어 앉아있다. 이 시간이 되면 기다렸다는 듯이 온 마을은 다시 하루를 시작하는 분위기가 된다. 온갖 레스토랑과 카페가 북적대고 어린 아이들이 골목을 뛰어다닌다. 이렇게 활기찬 밤은 자정까지 지속된다. 나도 그 분위기를 타고 그들 사이에 섞여 우조, 맥주와 함께 저녁을 먹는다. 


이것이 지난 2주간 이곳에서 보낸 하루 일과의 패턴.

이만큼 여유롭게 보낸 휴가가 없었다. 

학교 신문사, 아르바이트, 전공 공부, 사적인 수많은 약속들에 쫓기듯 지냈던 대학생 시절, 단 3일만이라도 아무 것도 하지 않아봤으면 좋겠다고 나는 소원했다. 그래서인지 근래의 여유로운 일상은 마치 은퇴자가 받는 연금마냥 이렇게 누려도 되나 하는 의심없이 당연스레 받아 들여지는 것이다. 물론 '치열한 삶은 계속되어야만 한다' 라는 일념으로 읽고 쓰고 생각하는 일은 게으름을 피우지 않으려고 나의 정신적 정체성을 붙들고 있다. 


떠나기전 메신저에서 선배언니가 말했다.

언제든 다시 갈 수 있다는 마음으로 여유롭게 넉넉하게 즐기다 오라고. 

그간 내가 계획했던 대부분의 여행은 이것도 놓치면 아깝고 저것은 꼭 먹어봐야 하고 그렇게 시간을 쪼개고 쪼개 계획하고 강행군을 하는 여행이었다. 일일이 엑셀 파일에 시간별 이동 경로와 여행지 정보, 주소, 전화번호, 웹사이트 URL까지 넣어 꼼꼼하게 계획하는 것이 하나의 즐거움이었다. 계획한 내용의 70퍼센트에서 80퍼센트를 달성했다 한들 아쉽지 않았는가 하면 그렇지도 않았다. 왜냐하면 여행이 세일즈 목표는 아닌고로.

그러니 언니 조언에 "아멘, 은혜로운 말씀 감사" 라고 대답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이런 여행이 가능하게 했던 사람들과의 운명같은 만남이 아무리 생각해도 신기할 따름. 아직도 꿈꾸고 있는듯 실감이 잘 나지 않고 간혹 꿈에 나타나는 직장 상사가 더 현실감 있어서 무엇이 꿈이고 현실인지 헷갈리는 상황. 꿈같은 현실이 눈앞에 있고 제발 현실이 아니었으면 했던 기억들이 이제는 꿈에서나 나타나고 있어서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행운이라고 해야 할지. 


아무튼 여유로운 일상에 감사하는 방법으로 몸과 정신이 게을러지는 것을 경계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겠다. 구체적으로 보고 듣고 먹고 읽고 느끼고 생각한 것들을 잘 기록하는 것을 사명으로 삼아 훗날 이 시간이 나를 성장시키는 한 단계였음을, 그저 얻어걸린 행운에 기대어 흘려보낸 시간이 아니었음을 이야기 할 수 있도록.


[간략 정보]

- 에레소스 마을의 2013년 여름 물가 :

  그리스 경제가 위기에 처했고 그로 인한 유로존의 붕괴 위험까지 거론되는 마당에 정작 에레소스의 물가는 그저 성수기 휴가지 물가였다. 

  > 카페라테 1잔 : 4.5 유로

  > 해변 타베르나의 메인 메뉴 : 15 유로 내외

  > 레스토랑 웨이터 하루 임금 (10시간 이상 근무) : 25유로

  > 빵 1유로

  그러므로 웬만한 식사는 직접 요리하는게 훨씬 경제적이다.




  

Posted by cooool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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